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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아바타를 보았다.

 아이맥스 좌석은 모조리 매진이라 디지털 3D로 봤는데, 그것만으로도 감탄스러운 CG였다. 이 영화의 그래픽에 대한 찬사는 여기저기서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니까 이쯤 하고. 이하 스포일러가 있을 예정이므로 주의 요망.

 - 절취선 -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작품이 몇 가지 있는데, 포카혼타스, 월-E,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퍼언 연대기 등이었다. 우선 백인 제국주의(포카혼타스)와 자본주의, 개발 및 성장 지상주의(월-E)를 꼬집고 있는 면에서 그렇고, 그러면서 (약간 지겹긴 하지만) 어머니 대지를 해치는 서구 문명의 비인간성과 그에 대비되는 원시 부족의 신화적, 영적 교감(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을 드러내는 면에서 그러하다. 기계를 통해 다른 몸에 접속한다는 발상 역시 이제까지 많은 사이버펑크물에서 이미 있어왔던 묘사였다. 내가 아는 가장 이른 시도는 아마 뉴로맨서였던 것 같다. 행성 판도라의 자연 묘사는 많은 부분에서 나우시카를 연상시켰고, 날아다니는 용과 계약한다는 부분도 퍼언 연대기나 테메레르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많은 소재를 따 왔다고 해도 그것을 절묘하게 섞어내어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어낸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매우 원형적이면서도 단순하여 애니메이션 라이온킹을 떠올리게 한다. 하반신 불구가 된 전직 해병 제이크 설리는 과학자였던 형 대신 행성 판도라로 파견되어 아바타 임무를 맡게 된다. 아바타란 요즘은 인터넷 용어로 쓰이지만 본래 인도 신화에서 '화현' 내지는 '강림'을 가리키는 말로서(산스크리트 원어는 '아바타라'), 이 영화 내에서는 인간의 정신을 행성 판도라의 원주민인 나비(Na'vi)족의 몸체에 연결시키는 기술을 뜻한다.

 제이크는 부족 내부에 침투하여 그들의 신뢰를 얻은 뒤, 행성 판도라의 자원을 채굴하기 위해 그들을 이주시키는 계획에 참여한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기업 이득을 위한 자원 착취보다도 그들의 문화에 참여하고 부족의 일원이 되는 데서 기쁨을 느끼게 된다. 또한 추장의 딸에 해당하는 지위를 가진 여전사 '네이티리'와 사랑에 빠지면서 결국 부족의 안위와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편에 서서 인간에 맞서 싸운다. 추장의 딸과 사랑에 빠지고 젊은 부족 리더의 시기를 산다는 소재는 지나치게 진부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하긴 진부하다는 것은 원형적이라는 의미이며 그만큼 효과적으로 재미를 준다는 뜻도 된다.

 영화 전반적으로 흥미로운 점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운데, 우선 제이크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겠다. 그는 전직 해병으로서 강인한 정신을 가졌으나 걸을 수 없는 불구의 몸이었다. 그러나 3미터 장신에 파란 피부의 젊고 새로운 몸에 접속한 그는 두 다리로 걷고 뛰는 자유를 다시 되찾게 된다. 그가 이 새 몸에 애착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다. 더불어 '계시'에 의해 추장의 딸의 눈에 들어 나비족 전사로 입문하게 되면서 그는 새로 태어나는 계기를 맞는다. 시련을 거치고 자신의 용기를 증명하는 과정, 특히 절벽 끝에 사는 이크란(비행하는 용)을 붙잡아 계약하는 의례에 있어서는 고대 부족들이 신화에 기대어 살아가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실상 나비족은 외계인일 필요가 없었다. 배경이 아프리카 오지나 미국이 갓 생겨날 당시의 아메리카 대륙이었어도 괜찮았다. 나비족은 이질적인 외계인이 아니라, 모양만 다를 뿐 본래 인간의 모습 그대로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결말 부분에서 온전한 현대인이자 전쟁에 종사하는 용병이었던 제이크는 나비족의 전사로 몸을 바꾸게 된다. 이는 신화와 동떨어진 죽은 세계에 매몰되어 있었던 인간이 다시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성스러운 신화의 세계, 서구인이 제공하는 문명이 더이상 중요치 않은 세계로 돌아간 것을 의미한다. 제이크는 영화 초반에서부터 '나는 평화를 위해 싸우는 전사였다'고 자신을 정의하는데, 결국 그는 나비족 전사가 되면서 변화한 것이 아니라 역설적이게도 본래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제이크에 대비되는 캐릭터가 바로 군인 '쿼리치 대령'이다. 그는 스타워즈 식으로 말하면 전사 원형의 다크사이드 포스에 빠져든 인물이다. 그는 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 유능하고 과감하지만 동시에 냉혹하고 무자비하다. 만화 총몽 라스트오더에서 자디가 말하듯, 전사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것을 위해 싸우는 자여야 한다. 그것이 왕이든, 자신이 중히 여기는 가치, 예컨대 명예, 충성, 조국, 평화, 공동체, 예술 등이든 말이다. 이것이 없는 전사는 괴물이 되기 마련이다. 신화를 갖지 못한 전사 원형의 부작용의 예는 이미 현대사에서 무수히 찾아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전사 원형을 없앨 수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강력하고 위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억압하게 되면 잠깐 잠잠해진 듯했다가 더욱 위험한 방향으로 표출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현대식의 변질된 입문의례가 군대에나 거리의 범죄 집단에도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인간이 신화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임을 알 수 있다. 전사 원형이 올바르게 발전했을 때 그것은 자제심, 목표를 향한 강렬한 집중, 인내, 강인함 등으로 나타나며 이것은 인류가 필요로 하는 덕목들이기에 원형으로서 진화되고 자리잡은 것이다.

 '토루크'는 일종의 토템으로서 나비족이 가진 강력한 동물 상징이다. 현대에야 총 맞으면 죽어야 하는 게 동물이지만, 인간이 맨몸으로 살아남아야 했던 시절에 맹수는 인간을 쉽게 파괴할 수 있는 자연력의 상징 그 자체였다. 이 상징을 굴복시키고 '토루크 막토'가 됨으로써 제이크는 나비 부족 전체의 신뢰를 얻어 여러 부족을 규합할 수 있게 되는데, 이때 그는 전사일 뿐만 아니라 왕과 같은 면모를 함께 가지게 된다. 즉 기사왕, 또는 전사이며 정복하는 왕의 모습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입문을 마치고 마침내 성인 남성으로서 통합/완성된 제이크의 모습이 나타난다.

 여주인공 네이티리는 나비족 추장(?)의 딸로서 제이크에게 그들의 신인 '에이와'에 대해, 그리고 나비족의 역사에 대해, 사냥과 비행에 대해 가르치는 스승이며 또한 연인이기도 하다. 여러 면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나우시카를 연상케 하는데, 특히 많은 현대의 여성들이 갖지 못한 일종의 전사적 속성을 띠고 있다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다. 신화나 심리학에서 바라보는 여자의 모습은 부드럽고 따뜻한 어머니나 연인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거침없이 남자를 집어삼키는 괴물 같은 자궁, 죽이고 파괴하고 억압하는 여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다만 네이티리는 그러한 파괴적인 속성에 물들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고 시종 자기 주도적인 모습을 보여 성인 여성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다. (비슷한 캐릭터로 선한 여전사에 해당하는 헬기 파일럿이 있는데 이름이 기억 안 난다...) 여하간 도시의 남성이 거세된 존재인 것처럼 도시의 여성들 역시 어느 정도는 그러하지 않은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작품에서의 은유가 그렇듯 나비족이 의미하는 것을 단 한 가지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 인류측에서 네이팜탄으로 '홈 트리'를 파괴할 때 울부짖으며 도망치는 모습은 베트남 전쟁 당시의 민간인들과 꼭 닮았고(특히 나비족들이 사는 곳이 정글이었으므로 그 상징성이 명백했다), 추장과 샤먼을 두고 집단적인 제의와 입문 의례 등을 행하는 모습은 여러 원시 부족들, 특히 아메리카 인디언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고양이나 뱀을 연상케 하는 격렬한 감정과 재빠른 몸놀림은 인간이 잃어버린 야수성과 무의식 속의 강력한 집단무의식을 상징한다고 볼 수도 있다. 감독이 융을 읽었구나 하고 생각되었던 부분이 바로 '영혼의 나무'의 기능에 대한 얘기였다. 나비족들은 영혼의 나무를 통해 그들의 조상과 여신 '에이와'에게 기도를 올리고 또 메시지를 전달받는다. 또한 에이와를 통해 정신이 몸과 몸 사이로 이동하는 장면도 나온다. 즉 에이와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집단무의식 그 자체인 것이다. 또한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나비족은 개발과 성장 지상주의, 자본주의에 대립되는 자연, 인간성, 영적 가치를 상징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영화 마지막에서 많은 희생을 치르고 승리를 거둔 나비족들은 기껏 사로잡은 인간들을 다시 돌려보낸다. 내게는 이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보이지 않았다. 최종적으로는 인간이 승리할 것임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에스파냐인들이 마야와 잉카 문명을 짓밟았고 미국인들이 인디언을 학살해가며 거주구로 내몰았던 것처럼, 인간은(특히 백인들은) 자신들의 장난감을 적절히 활용하여 마침내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것이다. 관객들은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심정적으로 나비족에 동조하며 오히려 인간이 죽을 때마다 통쾌함을 느끼게 되지만, 과연 실제로 행성 판도라가 발견되었을 때도 그렇게 느낄지 의문이다. 이젠 점차로 '인간성을 짓밟아선 안되는구나'가 아니라 '인간은 원래가 틀려먹은 것들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서 조금 불편한 기분이 든다. 그러고 보니 월-E나 디스트릭트 9을 봤을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쨌거나 결론적으로, 잘 만든 영화다. 극장에서, 그것도 가능하다면 아이맥스나 디지털3D로 관람할 만한 가치가 있다. 아낌없이 10점 만점에 10점 주겠다.

by 뱀  | 2009/12/24 09:43 | 생각과 이미지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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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뱀  | 2009/11/26 14:47 | 트랙백(1) | 덧글(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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