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01일
부디스틱 사이버펑크

아직 제목이 정해지지 않은 이 소설의 경우, 이건 분명히 내가 좋아할 만한 소재다. 나는 불교 신화(그리고 물론 거기 엮여 있는 인도 신화)에 사이버펑크의 클리셰를 몇 가지 뒤섞어 상당히 이상해 보이는 세계를 만들어 볼 생각이다. 거기다 최근 어느 수행에서 관심을 갖게 된 인체의 차크라 시스템과 밀교의 수인, 그리고 진언을 짜맞춘 주술 체계도 생각하고 있다. 인물도 사건도 모티프가 무궁무진하다. 여래의 생애나 전생, 그 제자들이 나온 경전들만 해도 우선 양적으로 대단하니까. 서양 소재라고 못 가져올 것도 없다. 유니콘이든 흑마술이든 마음 내키는 대로 가져올 생각이다.
경험상, 내가 마음먹고 쓰는 글에는 리플이 적다. 읽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깨에서 힘을 빼고, 무협소설을 쓴다는 기분으로 줄거리 위주의 소설을 써 보고 싶다. 사실 나는 그런 연습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늘 느끼지만 나는 문장력보다는 완급을 조절하며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힘이 너무 부족하다. 게다가 무협소설도 써 보고 싶었으니 잘된 일이지 않은가? 나는 한자가 필요없는 무협을 구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상에는 사소한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로 불교 및 힌두 신화에 대한 내 지식이 아직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소설이라는 틀을 갖추기에 충분할 만큼은 아니다. 우선 석가모니불의 전생 이야기인 자타카(본생담) 같은 건 기본으로 읽어야 하고, 제자들과 주요 보살들, 나한들과 그들에 얽힌 일화들도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한다. 불교의 세계관도 문제다.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삼계에는 도솔천이니 광음천이니 하는 33천이 있고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게다가 마후라가니 긴나라니 하는 천룡팔부 등등의 종족들도 있다. 제대로 적용시키려면 장난이 아니다. 붓다는 고대인답지 않게 겁이라든지 팔만사천 세계라든지 하는 식으로 우주적인 시공에 대한 언급을 하곤 했다. 힌두 신화에 이르면 이건 게으른 나로서는 감당이 안될 정도다.
이렇다 보면 내가 이 소재를 소화하기엔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좀더 지식을 쌓고 문장력도 끌어올려서 회심의 역작을 만들어 보려고 생각하지만, 그러다가 실제로 쓰기 시작하는 건 언제가 될까? 그런 식으로 묻혀간 소재가 벌써 네 갠가 다섯 개는 되는 것 같다. 이건 인생 단위의 걸작이 될 만한 소재지만 아직 이런 걸 쓰기는 모자라니까, 하면서 생각나는 것들만 적어두고 적어두고 하다가 결국은 스토리가 설정에 묻히고, 기가 질려 시작도 해 보지 못하는 것이다. 차라리 무작정 시작해 버리고 끈기로 버텼더라면 그 중 두 개 정도는 소설로 살아날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 나는 지금도 후회한다. 고등학교 시절에 분석심리학을 틀로 삼아 마음의 그림자를 탐구한다는 취지로 생각한 거창한 프로젝트 '내 마음의 배시스케이프(가칭)'도 그런 식으로 사라졌고ㅡ이거 지금 생각해도 너무 거창하다ㅡ, 이제와서 다시 시작하라면 싱거워져서 못 쓴다. 내가 장편을 못 쓰는 건 끈기도 끈기지만 이런 문제도 있었던 것 아닐까. 이거 쓰다 보니까 사소한 문제점이 아니다. ㅡ_ㅡ;
지금 생각할 수 있는 해결책은 역시 욕심을 줄이는 것이다. 이거 로버트 맥기의 책에 나오는 얘긴데, 슬럼프란 건 자기가 그려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상태를 일컫는다고 한다. 기억이 정확한지 잘 모르겠지만 그 세계의 범위를 세밀하게 좁힘으로써 작가는 그 세계를 잘 알게 되어 오히려 그만큼 자유로워진다는 게 요지였다. 내가 만든 세계에 파묻혀 버리기 전에 구체적인 집필 활동ㅡ_ㅡ을 시작해야겠지만 아직 지식이 많이 모자란 것도 사실이다. 어디쯤에서 중용을 찾아야 할지 목하 고민중이다.
# by | 2007/09/01 07:12 | 일상 | 트랙백 | 핑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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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스틱 사이버펑크라 +_+
예전에 개봉한 '스팀보이' 같은게 직접적인 스팀펑크라고 할 지~
농담이구요, 저도 한번 시도해 볼까 합니다.... 라지만 이미 쓴 적이 있군요. 사이버펑크는 아니지만 부디스틱 한 것은.
책은 아직 안 나왔는데 나오면 판갤에 광고 한번 때리겠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