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9월 22일
서태지 - 로보트 (가사 및 잡설 첨부)
서태지가 곧 컴백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5, 6, 7집을 모두 좋게 들었기에 다음 앨범도 기대하고 있는데, 특히 7집에선 음악도 음악이지만 서태지가 사용하는 감각적인 언어라든지 사용하는 비유에 대해서도 감탄을 하게 됐었다. 서태지가 상업적이라고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는 충분히 상업적이다. 그는 자신의 음악에 어떤 퍼포먼스를 사용하고 어떤 가사를 어떻게 전달했을 때 그것이 가장 쿨하게 대중의 가슴에 가 닿을지를 알고 있는 듯하다. 7집의 7번 트랙 '로보트'는 7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고, 명곡의 반열에 올려 놓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노래다. 오늘은 심심한 김에 로보트의 가사를 내 마음대로 분석해 보기로 한다. ㅡ.ㅡ↓ 절대적으로 주관적인 분석이므로 억지가 끼어 있을지도 모름을 유념해 주시기 바란다.
매년 내 방문 기둥에 엄마와 내가 둘이서
내 키를 체크하지 않게 될 그 무렵부터
나의 키와 내 모든 사고가 멈춰버린 건 아닐까
처음에 '엄마'가 등장하는 건 이 노래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전에도 한 번 얘기한 것 같지만 심리학에서 모자 관계 얘기는 대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나 유아기 고착 얘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노래는 성장을 멈춘 소년, 불완전한 피터팬에 대한 노래다.
난 아직 사람의 걸음마를 사랑하는 건
잃어버린 내 과거의 컴플렉스인가
오늘도 내 어릴 적 나의 전부이던
작은 로봇을 안고서 울고 있어
'아직 사람의 걸음마를 사랑'한다는 말에서, 노래 속의 화자는 암시적으로 아이는 인간적인 존재이며, 그에 대비되는 어른은 비인간적인 존재가 아닌가 하는 회의를 드러내고 있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아기의 순수함이야말로 인간적인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 다 커버린, 그래서 '순수함'을 잃어버린 자신이 지닌 컴플렉스이다. 그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자신의 어릴 적 추억을 상징하는 존재인 로봇을 끌어안은 채 울고 있는데, 이 로봇은 순수함의 상징임과 동시에 구속과 억압, 경직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더 이상 내겐 사람 냄새가 없어
마치 만취된 폐인의 남은 바램만이
난 오늘도 내 악취에 취해 잠이 들겠지
곧 끝날 거야
첫번째 줄에 유의하기 바란다. 더 이상 자신에게서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것은 어릴 적의 순수한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어릴 적의 자신을 지키려고 하다가 성숙으로 나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탓에 고착의 함정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하다. 순수함에 집착하다가 오히려 사람 냄새ㅡ생활감, 자신과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보는 시각, 혹은 결점이 많은 타인에 대한 포용력이라든지 남에게 의존하지 않고 억압에 맞서 싸우는 힘, 교활하게 기회를 붙잡고 재빠르게 물러날 줄 아는 지혜에 이르기까지, 성숙한 인간으로서 지니는 속성을 갖지 못하게 된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취했다는 표현이 두 번이나 나온다. 이 상태에 대해서 힌두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마야 여신에게 봉사하는 것은 모든 실체를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고, 자신의 공간을 마치 공기와 같은 비실체들로 대치하는 것이다> 여기서 마야란 환상, 혹은 황홀경을 가리킨다. 바꾸어 표현하자면 어릴 때 자신이 살았던 이상향, 에덴 동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직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무의식 상태에서 그때그때의 행복감과 고통에 반응하기만 하는 상태라고 할까. 그런데 사춘기를 넘어서서까지 에덴 동산을 그리워만 하고 있으면 거기서 '악취'가 풍기기 시작하고, 어른으로서 접하는 새로운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채 일찌감치 삶의 투쟁을 포기한 그는 방어기제 뒤에 몸을 숨긴 미완의 피터팬이 되고 만다. '곧 끝날' 거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하다. 그 환상을 부수고 긴 유아기를 스스로 끝내든지, 아니면 고착 상태를 더 견디지 못한 방어기제가 부서지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것이다.
혼탁한 바람에 더 이상 난 볼 수 없네
내가 누군지 여긴 어딘지
'혼탁한 바람'이란 쉽게 말하면 '남의 말'들이다. 스스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그에게 너무 많은 조언이 주어진다고 할까. 부모와 교사, 친구들뿐 아니라 대중매체가 그에게 온갖 말들로 세상이란 이러한 것이며, 인생은 이러한 것이며, 너는 이러저러하게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려 든다. 하지만 그 스스로가 이미 진짜 삶을 살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가르침을 주려고 하는 어른들 역시 제대로 자기 삶을 직시하는 이가 드물다. 그러니 자신이 누군지,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세계는 어떤 의미를 지닌 것인지 알 수 없을 수밖에 없다.
축복된 인생에 내가 주인공은 아닌가봐
공허한 메아리만이 나를 다그쳐
행복해 보이는 다른 사람들을 보면 그는 오히려 저주받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모든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공인데, 그는 이 인생이 자기 것이라는 실감이 없다. 그저 흐름에 휩쓸려 다닐 뿐이다. 자아를 찾으라, 꿈을 가지라, 노력하라고 역설하는 메아리들이 그에게는 공허하기만 하다. 조급한 마음은 들지만, 유년의 낙원에서 키를 재어주던 엄마에게 마음이 속박된 그는 열정도 없고 이루고 싶은 것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상태에서 '너는 꿈도 없냐'는 말을 듣기 싫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꿈을 만들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가짜 노력을 시작한다. 시험에 합격해 7급 공무원이 되는 것이 찬란한 비전이라도 되는 양 포장하는 사람들이 아마 그렇지 않을까. 나로서는 다른 사람의 꿈을 깎아내릴 자격이 없긴 하지만.
낯설은 바람에 어느 날
나의 곁에서 사라져버린 친구들 다 잘 있을까
너희와 함께 거닐던 작아진 이 길에
나 혼자서 구차하게 쓰러져 있어
'낯설은 바람'이란 물론 그의 앞에 닥쳐온 새로운 인식, 새로운 시각, 새로운 삶이다. 인생을 세 단계로 나누어 보면 마치 변증법과도 비슷한 순서로 가는데, 유년기의 무의식 상태, 그리고 성인기의 의식ㅡ즉 논리, 합리성, 이분법, 언어와 수학, 문제와 해결, 원인과 결과의 세계,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년기의 성숙한 통합의 상태로 나아간다고 한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당연히 첫 번째 변화이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중대한 도전이다. 이렇게 새로운 삶이 닥쳐오자 옛 친구들은 하나둘씩 사라져버린다. 몇몇은 그 바람에 맞서 어른이 되었고, 미처 어른이 되지 못한 채 낙오해 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래의 주인공은 옛날 길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 바로 여기서 이 노래의 주제가 아주 명확하게 나타난다. 어쩌면 Live Wire에서 '탄압'에 맞서 싸우겠다는 서태지의 에너제틱한 모습 뒤에 감춰진 내면이 이 노래에서 드러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태지가 그가 겪고 있거나 혹은 예전에 겪었던 상태를 노래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금도 그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마치 소년처럼 보일 때가 많다.
더 이상 내겐 사람 냄새가 없어
마치 만취된 폐인의 남은 바램만이
난 오늘도 내 악취에 취해 잠이 들겠지
곧 끝날 거야
혼탁한 바람에 더 이상 난 볼 수 없네
내가 누군지 여긴 어딘지
축복된 인생에 내가 주인공은 아닌가봐
공허한 메아리만이 나를 다그쳐
답답한 가슴만 나는 움켜잠고 숨죽이네
더는 짖지도 않는 개처럼
개가 짖지 않는 이유는 짖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짖지 말고 말을 해야 하는데 애초에 방향이 틀렸고, 그래서 화자는 자신을 개로 비유한다. 말을 하기 시작한다면 개는 사람이 될 텐데, 말하는 방법을 모르겠으니 답답한 가슴만 움켜잡는 것이다. 이끌어줄 스승 없이 이렇게 흘러다니는 소년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 by | 2007/09/22 09:36 | 그림자놀이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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