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02일
로저 젤라즈니 - 별을 쫓는 자

이 소설은 위대하다.
나는 이제껏 이토록 통합적이고, 암시적이며, 아름다운 소설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젤라즈니는 이 소설 속에서 신화를 잃은 세계 속에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원시적 인간'이 어떻게 본연의 세계, 세계의 중심으로 돌아가며, 그 고향에서 어떻게 잃어버린 자기 자신과 결합하는가를 경이적이고 황홀하게 그려낸다. 누군가는 이 소설이 '자아 발견'을 탐구한 사변적 소설이라고 했지만, 아니다. 자아의 발견이 아니라 자아의 '파괴'다.
이성과 언어로 이루어진 서구적 합리주의의 세계에서, 인디언 사냥꾼은 소외와 분열을 경험한다. 이 소설은 인디언 사회와 백인 사회의 갈등이 아니라, 원시 사회와 현대 사회의 가장 본질적인 차이를 다룬다. 현대 사회는 자신의 개성, 자신의 성공, 자신의 소유물에 집착한다. 원시 사회의 전사는 자신을 버리고 자기 목숨보다 소중한 어떤 것에 생을 바친다. 그는 자유를 버림으로써 진실된 자유를 얻어내야 한다. 현대인이 불합리한 운명, 불공평한 신이라고 부르는 것, 근대적 인간이 개발한 합리주의로는 결코 설명하지 못하는 세계 이면의 원리를, 젤라즈니는 언어를 통하면서도 동시에 언어를 뛰어넘어 가리킨다.
이 소설의 줄거리 자체는 사실 큰 의미가 없다. 초반에 독자가 적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적이라기보다는 주인공 윌리엄 블랙호스 싱어를 세계의 중심을 찾아 떠나가도록 떠미는 존재다. 그런 면에서 우리 주위의 어떤 것이든 '캣'이 될 수 있다. 재난, 사고, 애인이나 친지의 죽음, 파산, 질병. 그런 '부름'이 우리의 어두운 부분을 흔들어 깨우고 붙잡아 일으킨다. 우리가 두려운 삶 속에서 존재의 바른 방식을 찾아가도록 내몬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이러한 깊은 주제의식을 SF라는 형태와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외계생물, 변신수, 텔레파시, 순간이동 추적극이라는 장르적 형태 위에, 신화를 잃어버린 냉막한 세계에 내던져진 인디언, 전사이자 노래꾼이자 사냥꾼인 자가 겪는 고뇌를 실어놓는 솜씨란 실로 감탄스럽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난해하기만 한 게 아니라 재미있기까지 하다.
이 소설은 읽기 쉬운 소설은 아니다. 불편한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신화와 분석심리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이 소설이 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로저 젤라즈니의 가장 뛰어난 걸작이라고 감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982년에 이런 책이 나왔다는 걸 믿을 수가 없을 정도다.
# by | 2008/11/02 20:18 | 사적인 독서노트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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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님 단편을 무척 좋게 평가하신 것 보면 취향이 비슷할 것 같은데 리뷰를 믿어도 될는지...ㅎㅎ
제 리뷰는 적당히 걸러서 보시는 게 좋습니다. 악평도 많아요.
근데 제가 볼 때는 좋은 소설이긴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