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6월 17일
선녀와 나무꾼
숲은 낯선 불안으로 요동하고 있었다. 거대한 몸집의 나무꾼이 숲에 발을 들여놓으면서부터였다.
반투명한 안개가 겹겹이 숲을 감싸고, 나무꾼이 뿜는 숨은 형태를 가진 영혼처럼 길을 갈랐다. 그의 손에는 빛나는 황금의 날이 달린 아름다운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몸을 움직임에 따라 가슴과 어깨, 양팔의 장대한 근육이 피부를 뚫고 튀어나올 듯이 꿈틀거렸다.
가려진 태양은 그 빛을 잃었다. 나무꾼의 어두운 얼굴은 무거운 슬픔과 그 슬픔을 지탱하는 의지로 팽팽하게 맞물려 있다. 그의 한 걸음 한 걸음은 침묵을 몰아내는 장중한 음악 같았다.
그는 숲속의 연못가에 이르렀다. 희푸른 수면은 한 점 물결 없이 거울처럼 고요했다. 잠시 동안 그 앞에서 묵묵히 서 있던 나무꾼은, 천천히 돌아서서 황금 도끼를 치켜들었다. 여린 피부를 가진 나무들이 불길한 예감으로 조용한 신음을 발했다.
그의 움직임은 법칙의 집행과 같았다. 나무꾼은 단호하게 도끼를 내리쳐, 첫 번째 나무를 베었다. 날카로운 단말마가 공기를 흔들었다. 땅에 쓰러져 잔가지를 꿈틀거리던 나무는 곧 천천히 숨을 거두었다.
나무꾼은 얕은 한숨을 내쉰 뒤 몸을 돌려 황금 도끼를 연못에 집어 던졌다. 물소리는 금속성이었다. 곧 돌이킬 수 없는 원형의 파문이 수면의 고요함을 더럽혔다. 도끼는 바닥이 없는 연못 속으로 깊이 깊이 가라앉아 갔다.
그는 두 번째 도끼를 꺼내들었다. 이번에는 세밀하게 장식된 은제 도끼였다. 나무꾼은 눈물 흘리며 몸부림치는 두 번째 나무 위로 은제 도끼를 내리찍었다. 치명적인 상처가 나무의 육체에 새겨졌다. 벌레처럼 버르적거리던 두 번째 나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은제 도끼도 연못 속으로 던져 버렸다.
나무꾼이 숨을 고르며 잠시 기다리자, 마침내 못에서 기이한 움직임이 일어났다. 얼굴을 드니 연못 한가운데 쓸쓸한 얼굴을 한 선녀가 서 있었다. 새하얗고 축 늘어진 날개옷이 그녀의 가냘픈 온몸을 감싸고 있다. 죽은 것처럼 희게 뜬 눈동자는 초점이 맞지 않았다. 눈이 먼 것이다.
“더 이상 나무들을 죽이지 말아요.”
선녀가 말했다. 나무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무는 더 죽이지 않겠소. 대신 잃어버린 내 도끼를 돌려주시오.”
“도끼를 돌려주면 숲에서 나갈 건가요?”
“나가겠소.”
“좋아요. 그렇다면…….”
선녀는 나무꾼이 던졌던 황금 도끼를 물속에서 끌어올렸다.
“이것이 당신의 도끼인가요?”
나무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내 도끼가 아니오.”
선녀는 두 번째로 은제 도끼를 끌어올렸다.
“그럼 이것이 당신의 도끼인가요?”
“아니, 그것도 내 도끼가 아니오.”
그러자 그녀는 마침내 세 번째 도끼를 들어 나무꾼에게 보여주었다.
“그럼 당신이 잃어버린 도끼가 이것인가요?”
그 도끼는 차갑고 둔한 회색의 광택을 품은 납 도끼였다. 나무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게 바로 내 도끼요.”
선녀는 납으로 만든 도끼를 내밀었다.
“돌려주겠어요. 가져가세요.”
“정말이지 고맙군.”
그는 그것을 받아들고, 그 얼음 같은 침묵의 감촉을 확인했다. 잠시 동안 그는 아무 말 없이 도끼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그때 선녀가 의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당신이 잃어버린 도끼는 두 개였던 것 아니……”
그녀는 말을 마치지 못했다. 나무꾼이 느닷없이 납 도끼를 휘둘러, 선녀의 목을 잘랐기 때문이다.
검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생기 없는 그녀의 동맥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세찬 출혈이었다. 그녀의 창백한 얼굴이 공포와 경악으로 일그러지는 광경은 곧 바닥없는 연못 속으로 사라져 갔다.
연못 위에 남은 목 없는 선녀의 하얀 날개옷을 새까만 선혈이 흠뻑 적셨다. 검은 날개옷……. 나무꾼은 납 도끼를 땅에 떨어뜨렸다. 출혈은 한참 후에야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는 어서 그 다음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
피가 멎자, 검은 천의는 생명을 가진 것처럼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 올렸다. 곧 나무꾼의 시야는 복잡하게 얽힌 그물 같은 검은 날개로 가득 찼다.
“어서, 어서!”
나무꾼은 소리쳤다.
“신들이여, 나는 이미 너무 오래 기다렸소!”
드디어 새로운 머리가 선녀의 목에서 돋아나기 시작했다. 처음은 머리카락부터였다. 아름다운 흑발이 목 속에서 홍수처럼 흘러나왔다. 작은 이마와 그 아래 자리한 곧은 눈썹, 감긴 눈, 천천히 드러나는 진주 같은 뺨. 마치 태아와도 같은 작은 얼굴이 옛날의 그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끝내 그녀의 몸에 생명이 되돌아왔다. 양수 속에서 건져 올린 아기처럼, 재생한 선녀는 축축하게 젖은 모습으로 나무꾼의 발치에 쓰러졌다. 나무꾼은 몸을 숙여 조심스럽게 선녀의 몸을 들어올렸다. 그녀가 천천히 눈을 뜨자, 나무꾼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르페우스?”
가녀린 물음에 나무꾼은 젖은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되살아난 선녀를 거대한 두 팔로 단단히 끌어안았다.
“에우리디케, 나의 에우리디케. 이제 다시는 잃어버리지 않을 거요.”
2009. 6. 17.
초등 교과연계 전래동화 모에화 50제에서 트랙백. 모에화는 아니지만 전래동화 비틀기라는 취지에는 맞는다고 본다. 선녀와 나무꾼, 금도끼 은도끼,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신화를 프로이드가 밝힌 '세 상자 모티프'를 통해 섞어 보았다. 역시 시험기간에는 뻘짓이 제맛... 쿠쿠
# by | 2009/06/17 19:01 | 악몽의 기록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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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에화하면 역시 팥쥐 모에화가.......
팥쥐는 왠지 글래머일 것 같음.
요즘은 님프를 요정이라고 옮기거나 님프라고 그대로 쓰지만
옛날 책에선 님프를 선녀로 옮기기도 했던 걸로 기억해서
꽤 그럴싸하게 들어맞는다고 보았음. ㅋㅋ
어제 이런 모티프들 섞는 잡념에
콩쥐팥쥐가 호랑이에 쫓겨 동앗줄타고 올라가다가
마누라와 자식 찾으려는 나뭇꾼이 변한 '수탉'에게 쪼이는 꿈을 꿨음.
좀더 기다려 봐야 알 것 같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