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거울



 잠들었던 공주가 눈을 떴다. 추악한 난쟁이가 머리맡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그름한 주먹코에 사마귀가 붙은 뺨, 늘어진 턱, 뒤엉킨 수염. 그녀는 소스라쳐서 몸을 일으켰다, 일곱 개의 작은 침대 위에서. 나는 그 광경을 온전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온통 어두운 회색이었다.

 갓 내린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 같은, 창백한 뺨과 새빨간 입술의 대비. 그것은 그녀를 낳아준 옛 왕비가 바라던 것이었다. 옛 왕비는 죽었고, 왕은 새로운 왕비를 맞았다. 그녀는 시기심 많고 지겨운 여자였다. 왕비는 매일같이 내게 물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누구인가고.

 어느 날 나는 설명하기 어려운 변덕으로 공주의 이름을 말했고, 왕비는 질투심으로 미쳐 버렸다. 그러한 연고로 공주는 이 더러운 난쟁이들의 소굴에까지 쫓겨들어온 것이다. 왕비가 몰랐던 것은, 내가 언제나 진실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엾게도.

 "너는 누구냐?"

 난쟁이가 물었다. 공주는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난쟁이가 말했다.

 "내 이름은 제페토다. 너는 아주 아름답구나. 하지만 내 여섯 동생들이 돌아오면 너는 무사하기 어려울 게다. 어서 이 집에서 나가거라."

 "갈 곳이 없어요. 새어머니가 절 죽이려 해요."

 "하지만 여기 있으면 죽는 것보다 더 심한 일을 당할 거야."

 "당신은 착한 사람 같아요. 전 여기 있을래요. 절 도와주세요."

 "그렇다면, 내가 동생들이 나쁜 짓을 못하게 해 주지."

 "어떻게요?"

 "너를 굉장히 강하게 만드는 거야. 아름답고 차갑고 강력한 기계가 되는 거지. 그건 내가 아주 잘 하는 일이란다."

 물정 모르는 공주는 기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함께 지하실로 내려갔고, 첫째 난쟁이 제페토는 시술을 준비했다. 수술대 옆의 벽면에는 큰 거울이 걸려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그들을 응시한다.

 소매를 걷어올린 제페토의 왼팔은 정밀한 수술을 행하기 위한 수십 가지 기계로 이루어져 있었다. 옷을 벗고 얌전히 침대에 누운 공주는, 마취가 끝난 뒤에는 미동도 없이 잠에 빠졌다. 난쟁이는 이후 수 시간 동안 이루어질 기괴하면서도 우아한 작업을 시작하기에 앞서 숨을 고르며 잠시 눈을 감았다. 눈을 떴을 때 그의 왼팔은 이미 열두 갈래의 기계팔과 아홉 개의 메스, 세 개의 주사바늘, 기타 용도를 알 수 없는 도구들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해체를 시작할까. 머리와 심장부터."





 그 무렵, 왕비는 또 다시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불쌍한 여자. 보석 장신구에 값비싼 코르셋 드레스를 입고 덕지덕지 화장을 한 그녀는 조금도 아름답지 않다. 국왕이 그녀와 결혼한 이유는 오직 정치적인 것이었다. 왜 그가 왕비의 침실에 찾아오지 않는지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단 말인가?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군지 말해 보렴."

 "왕비님, 왕비님께서도 아름다우시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은 지금 난쟁이들의 지하실에 있습니다."

 그녀의 얼굴이 분노와 당혹으로 빨갛게 변한다.

 "죽지 않았더란 말이냐? 분명히 죽였을 텐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공주를 놓아준 사냥꾼이 무슨 꼴을 당하게 될지 짐작이 갔다. 왕비는 벌떡 일어나 화장대 앞을 떠났다. 거울이 없는 곳으로 가는 그녀를 나는 더 이상 보지 못한다.





 제페토는 약속을 지켰다. 며칠 뒤 세밀한 조정을 거친 공주는 아름답고 차갑고 강력한 안드로이드가 되어 깨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새 몸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러워했다. 제페토의 여섯 동생들은 완성된 그녀를 보고는 뭐라고 불평을 늘어놓으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연못가의 빈터에서 행한 성능 테스트는 완벽했다. 그녀는 5미터 높이의 점프를 했고, 강력한 전자근육에서 발생하는 펀치력은 7.5톤에 달했다. 100미터 거리도 6초 내에 주파한다.

 "훌륭해. 이제부터는 널 피노키아라고 부르마. 너 자신 외에는 아무도 널 위험하게 하지 못할 게다."

 "고마워요."

 피노키아 공주는 환하게 웃음지었다. 인공 피부와 인공 근육이 옛 얼굴의 아름다움을 정확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제페토가 쓰고 버린 공주의 예전 몸이 어디로 갔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이웃 나라의 시체애호증 왕자가 최근 비싼 값을 주고 산 물건이 있다는데, 아마 그쪽에 가 있지 않을까.

 왕비가 수색원을 보낸 것은 그 무렵이었다. 까마귀밥이 된 예전 사냥꾼의 후임으로 들어온 덩치 큰 사내였다. 그는 차를 몰고 거리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닌 끝에, 일곱 명의 난쟁이가 산다는 숲속의 집을 알아냈다.

 그가 캐낸 정보에 의하면 제페토는 오래 전 왕립과학기술원에서 일하던 연구원 중 하나였다. 그가 줄을 댔던 작자가 원내의 파워게임에서 패배한 뒤, 자신도 따라서 은퇴하여 한동안 조용히 지내던 참이었나 보다. 하필이면 왕비에게 미움을 사게 되다니 안된 노릇이다.

 숲에 들어간 사내는 난쟁이들의 집 대문을 탕탕 두드렸다. 제페토가 문을 열었다.

 "뉘시오?"

 "이 집에 여자를 숨기고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소. 그녀는 범죄자요. 공범으로 처벌받기 전에 순순히 내놓는 게 좋을 거요."

 "여자라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영장을 가져왔소. 비켜서시오."

 물론 영장 따위는 없었다. 사내는 막무가내로 난쟁이를 밀쳐내고 현관으로 발을 디밀었다. 피노키아 공주가 나타난 것은 그 때였다. 사내가 미소를 떠올렸다.

 "역시 여기 있었군, 공주."

 다음 순간 그의 눈이 경악으로 벌어졌다. 공주의 코가 뚜껑처럼 위쪽으로 덜컥 열렸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기다란 총구가 튀어나왔다.

 "네, 여기 있었어요."

 그것이 사내가 들은 마지막 말이 되었다. 소음기가 달린 탓에 거창한 발사음도 나지 않았다. 푹, 하는 싱거운 소리가 들릴 뿐, 그것으로 끝이었다. 목격자도 없었다. 총구가 되돌아가고 코가 덮였다. 제페토가 말했다.

 "총을 쏠 때 입으로 숨을 쉬기만 하면 돼."

 "하지만 그래도 불편한 걸요."

 피노키아가 투덜거렸다. 여섯 난쟁이들이 시체를 치우기 시작했다.

 왕비가 사용한 다음 수단은 나름대로 합법적이었다. 암살자를 보내는 대신 난쟁이들의 집이 있는 숲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한 것이다. 이주민들에게 지급되는 보상금은 턱없이 적었다. 때맞춰 왕립경찰청은 불법 시위에 엄중 대처한다는 방침을 공표했다. 법적 물리력을 동원하겠다는 의사 표시인 셈이었다.

 "걱정 말아요, 날 이길 인간은 없으니까. 경찰쯤은 문제없어요."

 피노키아는 자신만만했다. 제페토는 회의적이었다.

 "경찰청도 전투형 안드로이드를 보유하고 있어. 네가 그들 모두를 상대하기란 어렵다. 게다가 그건 나라 전체를 적으로 돌리겠다는 말과 같아."

 "그럼 어쩌죠?"

 "조금 상황을 지켜봐야겠지만…… 아마 도망쳐야 할 것 같군."

 여섯 동생 난쟁이들은 분노로 얼굴이 벌개져서 날뛰었다.

 "우리를 쫓아내겠다고! 우리를 쫓아낸다고! 어림없지! 우린 싸울 거야!"

 제페토는 난처한 듯 수염 속에 난 사마귀를 긁적거렸다.

 얼마 안 있어 퇴거를 명령하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며칠 뒤에는 그 통지를 취소한다는 문서가 도착했다. 난쟁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공주는 방긋 웃으며 어쨌든 나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 다행한 일이 아니냐고 천진하게 물어보았다. 제페토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어쨌든 일단락이 된 것 같으니, 오늘은 맛있는 저녁을 먹고 천천히 쉬기로 하지."

 다들 찬성이었다. 여느 때보다 훨씬 호화로운 만찬이 끝난 뒤, 제페토는 접시에 사과를 담아 내 왔다.

 "이거 비싸지 않은가요?"

 피노키아가 걱정스레 물었다. 난쟁이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선물받은 거야."

 그녀는 안심하고 사과를 베어물었고, 곧 정신을 잃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왕궁에 커다란 소포가 도착했다. 그것은 경비병들의 철저한 경계 속에 왕비의 방으로 곧장 옮겨져 왔다. 경비병들이 일을 끝내고 방을 나가자, 왕비는 마침내 기쁨에 찬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포장을 풀었다. 포장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투명한 강화 플라스틱 뚜껑이 달린 하나의 관이었다. 왕비는 음미하듯 그 안에 있는 것을 바라보았다. 관 안에는 무력화된 공주의 몸이 들어 있었다.

 "갓 내린 눈 위에 떨어진 핏방울…… 과연 아름다워. 이제 공주는 내 거야. 안드로이드가 되었으니, 천천히 가지고 놀다 죽일 수 있겠지. 그러고 나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거지, 그렇지?"

 "그렇습니다, 왕비님."

 내가 맞장구를 쳤다.

 "제페토 영감은 약속대로 왕립과학기술원에 다시 취직시켜 줬어. 아주 좋은 자리를 마련했지. 모르모트로 말야. 감히 날 거스르려 들다니!"

 왕비는 한참 동안 깔깔거리고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한번 찬찬히 공주의 얼굴과 몸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곧 그녀는 넋을 잃고 그 일에 몰두했다. 시리게 투명한 관 속에서 눈을 감은 그녀의 머리카락과 눈꺼풀, 속눈썹, 완벽한 코와 붉은 입술, 가슴과 팔로 이어지는 목과 어깨의 서늘한 곡선.

 결국 왕비는 관뚜껑을 열고 공주의 옷을 벗겨냈다. 공주의 기계 몸체는 관능적이면서 동시에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어둠을 모두 집어삼킨 끝에 결국 스스로 어둠이 된 빛 같았다. 문득 공주는 결국 누구였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 자신은 단지 아름다웠을 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어쩌면 인간조차 아니지 않은가. 백치 같은 여자, 하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때 왕비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거울아, 거울아."

 "예, 왕비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지?"

 "지금 왕비님 앞에 누워있는 바로 그 사람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그렇다면, 만약."

 왕비의 목소리는 이상한 흥분으로 떨리고 있었다.

 "내가 내 몸을 버리고, 이 기계 몸을 차지한다면, 그럼."

 나는 왕비의 말을 이어받았다.

 "그러면 왕비님은 정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그래, 맞아…… 그거야. 그 생각을 못했어. 그렇게 하면 되는 거야. 제페토, 제페토 영감을 불러야겠어. 난 정말로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가 되는 거야!"

 발갛게 홍조가 도는 얼굴로 왕비는 몸을 일으켰다. 그 행복하게 웃음짓는 얼굴은 이제까지 본 왕비의 모습들 중 가장 아름다웠지만, 나는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인간사 결국은 아무렇게도 되지 않는 법이다.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나는 그 일이 있은 뒤로도 계속 거울로서 살아가고 있다. 내게는 수많은 눈이 있지만 팔은 하나도 없어, 결국 언제나 관찰하는 자로 남는다. 내가 손댈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내키는 대로, 때로는 거짓말을 하고 때로는 진실을 말하며 살았다. 국왕이 죽고, 왕비도 죽고, 시체에게 사랑을 고백하던 이웃나라 왕자도 죽었다. 인간은 망가지고, 국가는 몰락하며, 기계는 녹슬어 간다. 나는 깨진 거울의 조각 너머로 그 광경을 묵묵히 응시한다. 이따금 거울 표면 위로 눈물이 떨어지면, 나는 옛날 일들을 생각한다…… 그런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정말로 누구였을까?



2009. 9. 21.

by 뱀  | 2009/09/21 18:35 | 악몽의 기록 | 트랙백 | 덧글(10)

이지투온 10월 19일부로 서비스 종료


 게임이 하나 망하는데 이토록 아쉽고 씁쓸한 기분이 들 줄은 몰랐다. 아끼던 코인을 풀어 해금열쇠를 지르고, 그동안 수없이 플레이했던 곡들을 하나씩 돌려보았다. 몇 년이나 전부터 하긴 했지만 누구와 같이 게임한 것도 아니고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어서 그저 싱글플레이나 줄창 했을 뿐이고, 그나마 레벨 13이 넘어가면 허덕거리기 일쑤였지만 그래도 정말로 즐거웠다. 이제는 이지투온에 들어가도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몰래 아끼던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기분이 든다. 노트들을 난타하면서도 저 모니터 뒤에 숨은 누군가의 고별사를 듣는 듯한 느낌. 너무도 아쉽지만, 아직 한 달이 남았으니 그 동안만이라도 더 즐기고 싶다.

by 뱀  | 2009/09/21 11:05 | 일상 | 트랙백 | 덧글(0)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